단양 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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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단양 우씨는 고려 광종 때 정조호장을 지낸 우현을 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문하시중, 판서, 성균좨주 등을 배출했으며, 조선 시대에는 35명의 문과 급제자를 냈다. 우천규와 우천석을 파조로 하여 여러 분파로 나뉘며, 각 파별로 항렬자를 사용한다. 2015년에는 약 19만 명의 인구를 기록했으며, 경상북도 영주시 등에 집성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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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시조 우현은 고려 광종 때 정조호장(魣朝戶長)을 지냈다.[1] 우현은 이후 신숭겸(평산 신씨의 시조)의 막내딸과 결혼하여 아들 우신을 두었다.
단양 우씨는 7세 우천규(禹天珪)와 우천석(禹天錫)을 파조로 하는 분파가 있다.
29세
우현의 6대손인 우중대(禹仲大)가 문하시중(門下侍中)의 자리에 오르면서[1] 단양 우씨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2][3]
우중대의 장남 우천규(禹天珪)는 남성전서(南省典書)였으며, 장녀는 정안왕후(정안왕후 우씨)였다. 차남 우천계(禹天啓)는 판서(判書)였고, 3남 우천석(禹天錫) 또한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올랐다.
우천규의 아들 우탁(1262-1342)은 성균좨주(成均祭酒)로 치사하였다. 우천석의 증손자 우현보(禹玄寶)는 단양부원군(丹陽府院君)에 봉해졌다. 그의 딸은 혜경궁(혜경빈 우씨)였다.
우현보의 장손 우성범(禹成範)은 공양왕의 부마가 되었다. 10대손인 우인열(禹仁烈)은 조선(朝鮮) 개국공신으로 추대되었으며, 판삼사사(判三司事)에 올랐다.
단양 우씨는 조선 시대에 35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했다.
3. 분파
{| class="wiki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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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조 !! 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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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탁(禹倬) || 문희공파(文僖公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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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2" | 7세 우천석(禹天錫)의 후손에서 갈라진 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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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칭(禹偁)의 아들 우길생(禹吉生)의 후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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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칭(禹偁)의 아들 우국진(禹國珍) || 문강공파(文康公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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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2" | 8세 우팽(禹伻)의 후손에서 갈라진 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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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복생(禹福生)의 아들 ||
|}
4. 항렬자
22세
30세23세
31세24세
32세25세
33세26세
34세27세
35세28세
36세29세
37세30세
38세31세
39세32세
40세33세
41세34세
42세35세
43세36세
44세37세
45세재(載)
동(東)口구(九)
口윤(允)병(柄)
남(南)口하(河)
口영(永)성(成)
무(武)口범(範)
口용(龍)인(寅)
경(慶)口화(華)
口목(睦)정(廷)
중(重)口한(漢)
口계(癸)학(學)
효(孝)口로(魯)
口주(疇)완(完)
영(寧)口경(卿)
口욱(郁)진(振)
정(庭)口기(起)
口욱(旭)상(祥)
준(準)
